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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조용필처럼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라면 트렌드일까요. 자극적인 제목의 곡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은근한 비유와 함축적인 표현이 많이 쓰이던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모양새죠. 흡사 시를 연상시키던 예전 노래 제목들이 문학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면 지금은 일상의 언어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무 스트리밍 사이트나 들어가서 제목을 한 번 훑어볼까요. 라면인건가, 꺼져, 될 대로 되라고 해, 너 땜에 못살아, 어이 없네, 듣고 있어?, 이놈. 


의도한 건 아닌데 노래제목 하나로도 시트콤의 한 컷 정도는 찍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중 제 눈에 가장 띄는 곡은 팬텀이라는 그룹의 ‘조용필처럼’입니다. 노랫말에 특정인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는 종종 봐왔지만 제목에 떡하니 이름을 박는 경우는, 적어도 저에게는 가요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특정인을 언급할 경우 그의 삶을 노래하거나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드러내기 위해 아티스트 이름을 끌고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돈 맥클린은 ‘Vincent’에서 화가 반 고흐의 삶을 노래했고, 김건모는 ‘My son’에서 스티비 원더나 비지스처럼 노래하고 싶었다 말합니다. 팬텀의 노래에서 조용필은 일종의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노랫말을 잠시 볼까요.


“창피한 나의 얇은 지갑, 내 맘은 그게 아닌데. 그래도 작은 불평 하나 없는 네가 있기에 조용필처럼 나 변함없이 노래할게. 너의 뒤에서 너를 지켜주는 내가 될게”





조용필이란 단어는 변함없는 그 무엇, 믿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조용필이 대체 누구길래. 서태지도 낯선 요즘 10대들에겐 독해불가일 것이고, 제 나이또래 30대 초반 사회인들에게도 이름만 익숙할 뿐 그의 음악세계를 깊이 공감하며 추억을 곱씹을 이는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찬찬히 조용필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이며 존재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거대한 축임을 알게 될 겁니다. 음악에 미쳐 살았고 꾸준히 자기 혁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팬텀이 조용필처럼 변함없이 노래하고 싶다고 한 것이겠죠.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를 다 훑기에는 시간도 부족할 뿐더러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고 신세대들이 듣기에도 올드하지 않은 음반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13집 <The Dreams>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끼고 살았던 조용필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가출했습니다. 이후로 7년 동안 첵돌스, 파이브 핑거스 등의 그룹을 거치며 경기도 파주 일대 미군기지에서 활동했습니다. 악전고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갑니다. 그 때의 기억을 담은 것이었을까요. 조용필은 앨범의 첫 곡 ‘꿈’에서부터 고향을 떠난 이의 외롭고 서러운 정서를 토해냅니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는’ 도시의 무정함을 겪어본 사람들은 압니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어본’ 이들도 압니다. 비루한 현실을 딛고 일어나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유일한 원동력은 꿈이라는 것을. 세련된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가창이 빛을 발한 조용필의 ‘꿈’은 꿈 하나로 각박한 삶을 이겨내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대중음악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의 핵심인 위로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 ‘꿈’ 한 곡만으로도 조용필의 13집이자 회심작인 <The Dreams>는 충분히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 새겨진 야망과 치열한 예술혼을 생각한다면 이 곡 하나만으로 만족하기엔 이릅니다. <The Dreams>는 1991년 발표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에 나온 여타 록밴드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사운드를 뽑아냈습니다. 동시에 록 사운드가 실험할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조용필은 당대 한국 최고 연주자들로 구성된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의 작업을 마다합니다. 대신 미국으로 직접 건너가 앨범 녹음 작업에 외국의 정상급 세션들을 끌어들입니다. 위대한 탄생의 배제라는 과감한 선택은 밴드의 수준이 낮아서라기 보다는 서구 록 사운드의 본질에 더 다가가고 싶은 조용필 본인의 오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조용필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세션맨이었던 톰 킨(Tom Keane·키보드, 프로듀서), 마이클 랜도(Michael Landau·기타), 닐 스투벤하우스(Neil Stubenhaus·베이스), 존 로빈슨(John Robinson·피아노)의 라인업은 고감도 사운드를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세련된 사운드로 녹여낸 록의 변주는 본인의 이전 작품들과도 차별화됩니다. 우선 장르적으로 록에 헌신했다는 점에서 순수성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합니다. 물론 3집에서 본격적으로 록을 시험했고, 4집에서부터 7집까지는 록 사운드 위주로 앨범을 채웠던 조용필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트로트, 민요 등 록과 잘 섞이지 않는 장르들을 다시 껴안으면서 앨범의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지구레코드와 10년간 10장의 앨범을 내야한다는 계약이 낳은 상업적 고려가 작용했습니다. 13집인 <The Dreams>는 백화점식 앨범구성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잠재우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합니다.





지구레코드와의 긴 계약을 끝내고 손에 쥔 아티스트로서의 자유는 결과적으로 록의 순수를 되찾아주었고, 최고의 사운드를 끌어내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에 불을 붙였습니다. 조용필은 전곡을 자작곡으로 꾸릴 정도로 <The Dreams>에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록에서 가지를 친 다양한 시도는 듣는 내내 경탄을 자아냅니다. 뉴웨이브의 영향을 받은  ‘꿈꾸던 사랑’, 전형적인 팝 록의 문법을 수용한 ‘꿈의 요정’, 메탈의 깜찍한 변용 ‘아이마미’, 라틴리듬을 록에 이식한 ‘장미꽃 불을 켜요’에 이르기까지. 앨범은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컨셉 앨범이라는 것 또한 앨범독해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꿈을 키워드로 다양한 결의 서사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서 그리는 꿈은 드라마틱하지만 화려하고 몽롱한, 그런 이미지적 환상은 아닙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 자신의 오래된 이상향과 같은 삶과 밀착된 욕망들입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손으로 잡으면 이내 사그라져버리고 마는 모래성과 같은 소망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내내 진한 공감을 자아냅니다.


꿈이란 단어는 오랜 시간 음악적으로 알게 모르게 느꼈을 결핍감의 표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간절하게 꿈꿔왔던 음악적 이상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꿈과 같은 현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앨범의 4번 트랙 ‘꿈의 요정’ 노랫말을 같이 볼까요.


“이젠 알아 꿈은 곁에 있잖아. 손 내밀면 느껴져. 내게로 와 사랑 곁에 있잖아. 아무것도 말하지 마 지금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방송출연보다는 공연쪽으로 음악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긴 조용필이기에 그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보기는 어렵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힘들죠. 확실히 소통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앨범에 쏟아 붓는 그이기에 지금도 음반을 통한 만남은 유효합니다. 


<The Dreams>는 나중에 가수 이승철에게도 영감을 줍니다. 1994년 발표된 이승철의 4집 <The Secret of Color>는 그가 조용필의 13집처럼 양질의 사운드를 뽑아내기 위해 직접 미국에 가서 녹음한 겁니다. 지금이야 해외에서 작업하는 게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그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모든 아티스트의 꿈입니다. 조용필은 <The Dreams>로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시켰고 이제는 다른 이의 꿈이 되었습니다. 조용필처럼 변함없이, 절실하게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